그림책의 마음(2) - 심층심리학이 전하는 그림책 이야기(언어-이금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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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4.11.04 | 조회수 : 29 |
그림책의 마음 - 심층심리학이 전하는 그림책 이야기 -
바우처사업 언어치료사 이금생
<헨젤과 그레텔> : 마녀와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순간
※ 페이퍼 커팅으로 만들어 낸 환상
거의 모든 사람이 한 번은 들어 보았을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는 그림 형제의 민담집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의 15번째 수록 이야기이다. 그림 형제는 민간전승 문학은 인류의 모든 삶을 촉촉하게 적시는 영원한 샘에서 나오는 영구적으로 타당한 형식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 부모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아이들
첫 장에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보이는 검은 집의 붉은 창은 모든 것이 음침하고 우울한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준다. 페이지를 넘기면 무력한 아버지가 왼편에, 마녀의 모습을 한 계모가 오른편에 있다. 계모는 나무꾼에게 아이들을 버리라고 요구한다. 내면이 빈곤한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이런 불안을 조성할 수 있다. 마음이 공허해지고 우울해져서 혹은 자신이 삶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어머니, 예민하고 걱정이 많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야만 하는 어머니는 아이의 근심과 걱정을 만들어 내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런 부정적인 모성 콤플렉스는 자녀들의 자연스러운 삶, 본능 활동, 본능적인 삶을 지나치게 과대하게 만들거나 빈약하게 할 수 있다고 융은 이야기한 바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을 모두 듣고 있었다. 헨젤은 동생에게 무슨 수든 써 보겠다고 약속한다. 원전에서는 “조용히 해, 그레텔. 상심하지 마.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라고 한 뒤, 조용히 밖에 나가 하얀 자갈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그레텔에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거야”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갈을 따라 집으로 되돌아온다. 마음의 문제(무서운 어머니, 자녀를 버리겠다는 부모의 계획, 무기력한 아버지)를 마주하고 나면 이런 것들이 과연 극복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압도되게 마련이다.
※ 살기 위해 떠나야 한다
조약돌 장면은 마치 자신을 버리는 무서운 부모에게 자꾸만 돌아가려는 퇴행적인 모습과 그 위험에 대한 것이다. 버려지고 상처받았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부모에게 되돌아가서 또다시 버려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돌아왔으니 이제 버리지 않겠다고,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얼마나 흔한지 모른다. 어머니의 끔찍한 어두운 면 속에 숨어 있는 조그만 사랑, 그것이 아이들을 계속 어머니에게도 돌아오게 한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가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부모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옛집으로 회귀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로부터 분리된 자는 늘 뒤돌아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이러한 그리움은 이미 성취한 모든 것을 위협하는 소모적인 열정이 될 수 있다고 융은 경고한다. 개인적인 부모를 넘어서 마음속의 원형적인 부모상이 일깨워지고 활동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해서 과거에 집착하고 사로잡히는 모습들도 집으로 돌아가는 헨젤과 그레텔의 모습일지 모른다. 또다시 버려질 때, 그때는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만 하는 것, 그것이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헨젤과 그레텔은 살아남기 위해 부모를 떠나야만 한다.
※ 마음 속에서 울리는 계모의 목소리
지치고 궁핍한 마음의 소유자인 부모는 종종 자식들을 근면하지 못하다고 비난한다. 어른이 된 후에도 성실함으로 나름의 성공을 이루어 낸 후에도 많은 경우 “나는 성실하지 못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난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돕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자신을 게으름뱅이라고 탓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마음속에 계모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가난의 이유도, 불행한 집안의 이유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하지만 계모의 매정함, 부정적인 과거의 어머니는 우리를 숲, 즉 깊은 무의식과 숨겨진 콤플렉스의 영역으로 인도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원형적인 어머니가 사는 숲
고통의 의미에 대해 집중할 수 있어야 할 때가 있다. 버려지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할 무언가가 깊은 숲속에 있을 것이다. 숲은 어둡지만 생명, 생기와 관련된 어머니적인 상징이다. 이곳에서 시련과 삶의 통과의례를 뜻하는 이니시에이션(initiation)이 벌어진다. 이곳은 미지의 위험과 암흑이 지배하는 곳이다. 암흑의 숲이나 마법의 숲에 들어가는 것은 경계의 문턱을 넘어서 다른 세계로 들어감을 상징한다. 즉 숲은 혼이 미지의 위험으로 들어가는 것, 죽음의 영역, 자연의 신비, 그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깊숙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영적 세계를 나타낸다.
※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손가락을 확인하려는 마녀에게 뼈다귀를 내미는 헨젤의 행동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풍족히 먹였다며 잡아먹으려는 내면의 어머니에게 자신이 충분히 통통해지지 않았다고, 음식에 대한 대가(잡아먹힘)를 거부하려는 용기일 수 있다.
※ 마녀와 정면 대결이 필요한 순간
개인적인 어머니가 아닌 자연 모성과 접촉하게 되면 빵과 과자를 먹고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양육과 돌봄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자연 모성은 어두운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성장시켜 돌려보내지 않고 계속해서 가두어 두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심리적인 발달단계에서 개인적인 모성을 확인하고 자연 모성의 양육을 경험한 후에는 갇히고, 잡아먹힐 수 있는 위험을 인지하게 된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지 않아야 할 때가 온다는 것, 그때는 위험한 마녀와 정면으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 수동적 소녀에서 용기 있는 여성으로
이야기 초반 겁 많고 수동적인 소녀였던 그레텔은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신에게 도움을 구한 뒤 용기 있는 소녀로 바뀐다. 이제 그레텔은 마녀의 집안일을 도울 필요가 없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이러한 내면 상황의 노예가 되어 있는 지 모른다. 그레텔은 마녀의 집에서 용기 있는 여성으로 성장하고 변모한다.
※ 고통은 보물을 품고 있다
무서운 마녀가 어떻게 내게 유익하단 말인가? 이 불덩이가 도대체 어떤 쓸모가 있을까? 하지만 마녀를 극복해 낸 오누이는 마녀의 집에서 보물을 찾아 돌아온다. 보물은 마녀의 집에 오랜 시간 숨겨져 있던 값진 것이어서, 모험을 끝내면 숲 밖의 집에서 넉넉하고 풍족한 삶을 가능케 할 것이다.
<출처: 이나미, 조자현. (2020). 그림책의 마음. 서울: 다산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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